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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혐오를 넘어](5)개인의 용기·선의에 기댄 혐오 대응은 ‘한계’…이제, 차별적 현실을 바꾸자 2017-11-06 16:16:00 / 360

 

ㆍ공감과 평등사회로 가는 길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대응을 개인의 선의와 자발적 노력에만 맡길 수는 없다. 혐오에 대한 가장 좋은 대응은 혐오와 차별이 싹트지 않는 사회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차별과 혐오를 넘어서기 위해 우리 사회의 교육과 법·제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5회에서 짚어봤다. #힘이_세지는_혐오대응법 전체 내용은 http://nohate.khan.co.kr 에서 볼 수 있다.
 


“혐오표현에 대항하기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차별적 현실 그 자체다.” 추지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말한다.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차별적 사회구조 속에서 벌어지는 혐오와 차별에 맞서 개인이 용기를 내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 사람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익숙해진 나머지 당연하게 여길 때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가 당할지도 모르는 보복과 불이익에 침묵하기도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차별과 혐오가 벌어지지 않는 사회·문화 환경을 가꿔야 한다. 이때 필요한 지렛대는 바로 교육과 법이다.

■ 인권교육으로 오늘과 미래를 바꾼다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혐오표현이 초등학교 교실까지 무차별적으로 확산되자 정부와 지자체들이 인권교육, 성평등 교육과 공론화에 시동을 건 것이다.

올해 서울시는 ‘성평동(성평등한 우리 동네 만들기)’ 시범사업을 펼쳤다. 시민단체와 지방정부가 힘을 모아 자체적으로 성평등 교육안을 만들고 서울 시내 30개 중학교를 대상으로 시범교육 중이다. 성차별과 혐오표현의 문제점 등을 알린다. 함경진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활동가는 “아이들의 혐오표현은 여성,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다”면서 “나도 언젠가 노인이 될 거고, 엄마가 될지도 모르고, 우리 엄마가 있고… 이렇게 연결되면 ‘내가 혐오의 대상이 되지 말란 법이 없구나’라는 걸 아이들의 시각에서 깨닫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교사를 대상으로 한 성평등 교육안 매뉴얼을 만들고 있는 이나영 중앙대 교수는 “연령별·문화권별로 다양한 차이들을 포괄할 수 있는 체계적인 성인권 교육안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인권이 존중받는 교실을 위해선 학교와 교사들이 먼저 변해야 한다. 교사가 여성·성소수자·이주민 혐오 발언을 하는 교실 환경에서 학생들이 균형 잡힌 인권 감수성을 기르기는 어렵다. 이윤승 이화여대 병설 미디어고 교사는 “학교에서 혐오와 차별, 소수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교사들이 먼저 바뀌고 이를 통해 교육이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명화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운동옹호관은 “교원 임용 과정에 인권 교육 커리큘럼을 반드시 포함하는 방법을 비롯해 인권 교육을 필수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엔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내용이 포함된 학생인권조례 개정안이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학교 교장·교직원·학생 모두 차별·혐오표현으로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개정안을 발의한 김경자 서울시의원은 “학교 내 차별·혐오표현은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중앙정부와 국가인권위원회도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9월 ‘성평등 문화확산 TF’를 발족하고 성평등 교육을 다각화하는 한편 게임 등 미디어에 범람하는 혐오표현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실시한 혐오표현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혐오표현을 줄이고 규제하기 위한 권고안을 낼 예정이다.

“가장 좋은 규제는 ‘혐오표현이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는 여건’을 만들어가는 긍정적인 조치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는 국가가 혐오에 대항하는 당사자와 제3자의 힘을 길러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지지하는 규제’라고 부른다. 정부가 권고·자문·교육·홍보 등을 통해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시민들을 적극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시민사회에서 자율적 노력을 통해 혐오표현에 대항하는 선순환이 이뤄질 때 차별과 혐오가 사라질 것이란 얘기다.
 


■ 차별금지법은 우리 모두를 위한 법

“혐오와 차별은 쌍둥이다. 많은 혐오가 차별적 구조에서 싹트고 있고 혐오가 차별을 공고화한다.” 조혜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말한다. 전문가들은 혐오를 없애기 위해서는 차별을 금지하고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해외 선진국들은 관련 법규를 갖추고 있다. 제노사이드(집단학살)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유럽연합은 인종·종교·민족과 관련된 특정 집단에 대해 공개적으로 폭력과 증오를 선동할 경우 형법상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고 있다. 독일은 혐오표현과 같은 차별적 괴롭힘을 금지하고, 국적·인종·종교 등을 이유로 한 증오선동에 대해서는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다.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미국은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데 소극적이지만, 고용 영역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혐오표현에는 엄격하게 대처한다. 인종·피부색·성별·성적 지향·임신 여부를 이유로 욕설·놀림·불쾌한 농담 등을 할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토록 강력 규제하고 있다.

반면 아직까지 한국에는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별을 아우르는 통일된 기준이나 합의가 없다. 한국에서도 인종·종교·장애 여부·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한 포괄적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10년째 ‘나중에’라며 유예되고 있다. ‘성적 지향·이주민’ 등을 차별금지 사유에 넣는 것에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보수단체가 반대하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은 국가인권위 권고로 2007년 법무부가 입법예고를 했지만, 보수단체들이 ‘동성애 합법화’라며 강하게 반발해왔다.

하지만 차별금지 대상에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것은 ‘특정한 종류의 차별은 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과 같다. 조혜인 위원장은 “논란이 되는 부분을 회피하고 타협하면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 문제를 넘어설 수 없다. ‘나와 다른 사람을 차별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해야 사회가 한 단계 진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삶에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 정혜실 이주민방송 대표는 말한다. 차별금지법은 사회적으로 어떤 것이 차별이고, 하면 안되는 일인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예전에는 가정폭력은 ‘집안일’이었지만 가정폭력을 처벌하는 법이 생기면서 가정폭력은 하면 안되는 범죄라는 인식의 전환이 생겼다. 차별금지법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은 “차별받는 사람과 차별받지 않는 사람을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은 ‘나는 차별받지 않을 것’이란 오해에서 비롯된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모두를 부당한 차별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물론 법적 규제가 능사는 아니다. 강력한 처벌 조항을 갖고 있는 유럽의 경우에도 실제 처벌은 유명인 등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드물게 이뤄진다. 홍성수 교수는 “선진국이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법을 둔 이유는 모든 혐오표현을 처벌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차별과 혐오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상징성이 더 강하다”고 말했다.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는 처벌보다는 피해구제와 예방이 효과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차별금지법도 차별 시정기구를 통해 피해자를 돕고 차별을 예방하는 데 더 많은 무게를 싣고 있다.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증오선동이나 증오범죄에 대해선 형사처벌하는 등 규제하는 동시에 차별 시정기구를 통해 차별을 시정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이 해외에서도 일반적이다. 동시에 교육과 다양한 지원을 통해 혐오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과 이들과 연대하는 제3자들이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 같은 제도적 뒷받침이 함께할 때 혐오를 넘어서는 ‘당사자-제3자-제도’의 삼각연대가 완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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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이영경·김지원·이효상·최미랑·김찬호·배동미·유설희·유수빈 기자

<이영경·심윤지·김지혜·권도현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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