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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여혐]초등 교실에서 싹트는 ‘여성혐오’ 2017-07-27 15:56:31 / 510

 

#1

인터넷서 접한 여성혐오 표현으로

여학생ㆍ여교사 상대 언어폭력 만연

또래 주목 받으려 약한 대상 희생양

성인의 여성혐오 범죄와 같은 구조

 

#2

“레알 밥도둑” “기모띠” 등 내뱉어

피해 입은 초등생, 중고생보다 많아

인터넷 방송의 유해 콘텐츠들은

감시와 통제 사각지대에 놓여

 

지방의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사인 A씨는 최근 한 여학생으로부터 같은 반 남학생 B군이 자신을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있다는 신고를 받았다.

쉬는 시간이나 집에 갈 때 ‘패드립’(부모님을 욕하는 등의 패륜적 놀림말)’이나 듣기 힘든 성적 표현, 여성 비하 표현을 계속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B군은 고위 공무원 부모 밑에서 별다른 문제 없이 자란 아이였다.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단순하고도 놀라웠다. “내가 이길 것 같아서요.” 작은 몸집에 다른 남학생들에게는 말도 잘 못 붙이는 B군은 만만해 보이는 여학생에게 공격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었다. A 교사는 “인터넷 등을 통해 어른들이 쓰는 여성혐오 표현과 행동을 배워 따라 하는 남학생들이 많다”며 “학생들이 그저 재미 삼아, 또래 친구들한테 인정받으려는 생각에, 쉽게 이런 행동을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강남 한 빌딩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무고하게 살해된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혐오를 사회적 현상으로 주목하게 만든 계기였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알파걸에 좌절하고 인정욕구에 시달리는 남성들이 극단적 혐오 공격을 하는 것으로 진단됐다. 비슷한 일들이 초등학교 교실에서 재현되고 있다. 그 어느 시대보다 여학생 목소리가 크고 성평등 교육이 강조되는 교실에서, 뒤틀린 성적 표현이 넘실대고 여성을 대상화하거나 공격하는 일들이 횡행한다. 성 인식과 감수성이 정립될 청소년기에 은연 중 흡수하는 성차별 경험은 여성혐오로 자랄지 모를 씨앗이 되고 있다.

 

일상어가 돼 버린 욕과 성적 표현

 

욕설과 성적 표현은 이미 초등학생부터 남녀 모두에게 일상화했다. 또래 여학생이나 여교사를 성적 대상으로 삼는 일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박현이 기획부장은 요즘 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당연하지’ 게임을 예로 들었다.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에게 ‘빨아 봤니’ ‘해봤니’라는 말을 던지죠. 여학생들이 수치심을 느끼거나 불편해 하면 남학생들은 신이 나서 반복합니다.” 남학생들 사이에서 ‘미친놈’은 남학생들끼리 정겨운 대상에게 쓰는 친근함의 표현, ‘미친년’은 매우 싫어하는 상대에게 하는 경멸의 말로 통한다.

수도권 초등학교 5학년 담임 C 교사는 지난주 학생들과 ‘서로 절대로 써서는 안 되는 욕설과 표현’을 정했다. 평소 들었을 때 기분 나쁜 말을 얘기해 보자고 하자 ‘기모치’ ‘야마테’ 등의 일본어, ‘리얼 밥도둑’ ‘니 얼굴 실화냐’ 등 외모 비하 표현이 쏟아졌다. ‘기모치(이이)’는 ‘기분(좋아)’, ‘야마테’는 ‘그만’이라는 평범한 뜻이지만, 문제는 단어의 발원지가 일본 포르노여서 성적 맥락으로 통용된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를 명확히 아는 아이도 모르는 아이도 있지만 입 밖에 내는 데 대한 경계심이 무너진 것은 사실이다. 대체로 유튜브, 아프리카TV 등 인터넷 방송 진행자들이 무분별하게 쓰는 단어를 초등학생들이 배워 아무렇지 않게 쓴다. C 교사는 “남학생들이 워낙 흔히 쓰다 보니 여학생들에게도 상당히 퍼져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은 갖가지 욕설, 성적 표현, 외모 표현 등을 일상어처럼 쓰고 있다.

 

여학생과 여교사를 향한 성적 폭력도 중고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부가 전국 초중고생 4만3,211명(초등 1만8,854명)과 교사 6,7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2월 발표한 학교 성폭력 실태 조사 결과, 응답자 중 성추행, 성희롱, 성폭행 등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답한 초등학생 비율은 2.1%(약 396명)였다. 고등학생(1.9%), 중학생(1.4%)보다 높은 수치다. 피해 초등학생의 73.5%는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의 또래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답했다. 자신이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초등학생도 300명이 넘었다(1.6%).

최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회가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 교사 6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평등 인식 실태 조사’에서 성희롱 피해를 입었다는 초등학교 교사 중 학생으로부터 당했다는 응답자가 19.1%로 나타났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여교사는 “남학생들끼리 롤플레잉게임(RPG) 등을 함께 하며 채팅으로 알게 된 여성 비하 단어를 여교사는 모를 것이라 생각하고 교실에서 마구 쓰면서 비웃기도 합니다. 저는 RPG 게임을 하기 때문에 그런 단어를 알아듣지만, 잘 모르는 여학생이나 여교사는 눈 뜨고 당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또래 인정 받기 위한 공격

 

초등학생들의 말과 행동이 그렇게까지 성적이겠느냐는 시각이 물론 있다. 실제로 문제 언행을 하는 학생이나 피해를 입은 학생들 모두 심각하게 안 보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 재미 삼아, 튀고 싶어 그랬다는 남학생들의 공격적 행동에 대해 전문가들은 또래 집단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 주변의 관심을 끌어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욕구가 깔려 있다고 말한다. 김인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여성혐오 표현을 쓰는 아이들을 여성혐오주의자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인터넷에서 (여성혐오 표현을) 놀잇감 삼아 다른 남성들과 게시글ㆍ댓글을 주고 받으며 재미도 찾고 관심을 끄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만만한 개인과 집단을 강하게 공격할수록 더 큰 주목을 받는다는 생각에 경쟁적으로 가학의 수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만만한 여성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 드는 점에서 사실상 성인들의 여성혐오 범죄와 같은 발생구조다. 최이문 경찰대 교수는 “‘또래 규범’을 사회적 규범보다 더 중시하는 청소년들은 여성을 대할 때 바람직한 태도가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없고 또래 남학생 중 가장 힘이 센, 이른바 ‘수컷 우두머리(알파 메일)’에게 칭찬받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하다”고 말한다. 예전 같으면 자신보다 약한 남학생들의 돈을 빼앗고 주먹으로 위협하는 ‘불량스러운’ 행동으로 ‘멋진 수컷’임을 과시하려 했던 남학생들이 지금은 여학생, 여교사를 존재 확인의 희생양으로 삼는다.

인천 한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스스로 정한 교실에서 쓰지 않기로 한 말들 리스트. 학생들이 욕설, 성적 표현, 외모 비하 등으로 서로 상처 주는 일이 많아지면서 학급 회의를 통해 쓰지 말아야 할 표현들을 정해 게시판에 붙였다. 담임교사 제공

 

젠더 의식이 확연히 높아지고 여학생들의 목소리도 커졌는데 여성에 대한 혐오와 공격이 종종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년 여성혐오의 탄생은 역설적이게도 성평등 교육의 인식 편차가 혼재한 교육 현장에서 여학생 지위가 높아진 환경에서 나타난다. 지방의 한 초등학교 D 교사는 “현재 학교 커리큘럼이나 평가 방식이 여학생에게 유리한 면이 있고, 실제로 수업시간에도 여학생들이 리더십을 발휘하고 남학생들이 따라 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중간ㆍ기말의 지필고사 대신 평소 과제를 꼼꼼히 챙겨 점수를 딸 수 있는 수행평가에서는 여학생이 평균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는다. 남학생들이 전두엽을 포함한 대뇌가 여학생들보다 늦게 성숙하는 것이 영향을 미친다. 신체적으로 뒤지지 않고, 학습능력은 더 우월한 여학생에게 스트레스를 받은 남학생 중 일부는 그 반작용으로 공격성을 드러낸다. 그러다가 “약자인 여학생을 괴롭혔다”며 남학생만 더 호되게 혼나는 일이라도 있으면 여성 집단 전체에 혐오와 반발이 생긴다. 사회 전반의 성 차별 실태에 대한 균형감이 없는 상태에서 심각한 여성혐오로 번질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통제 안 되는 인터넷 성 왜곡 부추겨

 

청소년들의 왜곡된 성 인식을 고착화하는 데에는 문화적 배경이 한몫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개방적 대중문화와 성적 표현에 너무나 쉽게 노출된다는 점이다. 아이돌 가수처럼 꾸미고 다니며 성 상품화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왜곡된 인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여학생도 마찬가지다. 연세대 바른ICT연구소가 4월 발표한 ‘2016년 스마트폰 사용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하루 평균 3.4시간으로, 만 18세 이상 성인(3.35시간)보다 더 길다. 초등학생들은 스마트폰을 동영상, 웹툰, 음악 등 엔터테인먼트(40%), 게임(29%)에 주로 쓴다.

학교나 집에서와는 판이한 ‘인터넷 정체성’을 지닌 청소년들이 간혹 있지만 부모들은 이를 잘 알지 못한다. 지방에서 28년째 초등학교에 근무 중인 E 교사는 최근 평소 모범생으로 알고 있던 한 남학생으로부터 성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여학생의 신고를 받았다. 해당 남학생은 페메(페이스북 메신저)나 카톡(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로 여학생들에게 갖가지 욕설, 성적 표현이나 야한 사진을 보냈다고 한다. E 교사는 “얼마 전까지 학교 폭력에서 주먹으로 때리는 폭력의 비중이 컸다면 요즘은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성희롱이나 언어 폭력이 더 큰 문제”라며 “피해 학생이 피해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알기도, 지도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많은 학교가 학생들에게 단체 카톡방을 만들지 말라고 지도하지만, 사실상 교사의 통제 범위 밖이다.

 

초등학생들이 여성 혐오, 성적 표현, 욕설 등을 접하는 온상인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등 인터넷 방송의 유해 콘텐츠는 그러나 감시와 통제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다. 자극적 콘텐츠와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고정 시청자가 130만명이 넘는 아프리카TV의 ‘BJ철구’가 대표적이다. 초등학생들에게 인기를 누리는 이 프로그램은 심각한 욕설ㆍ막말 방송으로 신고가 이어졌다. 2015년부터 인터넷 방송 심의를 시작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9차례 시정 조치를 내렸지만 짧은 방송 정지 후 막장 방송을 재개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욕설과 비하 표현 같은, ‘불법 정보’ 아닌 ‘유해 정보’에 대해서는 제한적 조치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방심위는 사업자에게 방송 진행자에 대한 계약 해지, 해당 콘텐츠 삭제 등을 요구할 수 있지만 사업자가 이를 따르지 않아도 벌칙 조항이 없다. 인터넷 방송은 방송이 아닌 통신에 속해 방송법의 적용 대상도 아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사업자와 BJ가 수익을 나누는 구조여서 사업자는 가급적 방송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도에서 시정 조치를 내린다”며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폭력적이고 선정적 방송에 대해서는 진행자와 사업자가 공동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년 소녀가 함께 있지만 어울리지 못하는 교실, 개방적 성 표현을 성평등으로 착각하는 대중문화, 남녀 친구를 커플로 부를 뿐 이해하지 못하는 관계는 성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모든 노력을 무위로 만들 수 있다. 여성혐오의 씨앗은 이렇게 교실에서 뿌려지고 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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